들라크루아, 그의 이름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어도, 아마도 이 그림 [자유를 이끄는 민중]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그림일 것입니다. 겪동적으로 묘사한 하늘과 함께, 한 여성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 시체위에 서서 총, 칼을든 남성들을 이끄는 이 강렬한 장면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힘든 엄청난 임팩트를 줍니다.
그의 어떤 삶과 가치관이, 이러한 그림을 만들었을까요?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강렬한 색채, 구도, 윤관선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붓질로 “회화의 학살자”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이러한 화풍은 그의 누드화에 더욱 잘 어울리고, 환상적인 느낌을 안겨, 애로틱한 느낌마저 줍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그.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누구 였을까요?
그의 사랑은 “하녀 제인이었다”라는 루머 (그가 그린 하녀 “제인의 초상”을 보면, 그녀를 지켜주리라듯 하듯, 옷을 반듯하게 입고, 머리 캡까지 쓰고 그린 그림)가 있습니다.
또한 음악가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가 있어요. 이 모든것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설”일 뿐 이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라는것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선가 봐 왔던, 그림을 그린 이 사람의 삶이 궁금하지 않나요?
그는 어떻게 살았고, 그 시절 돈은 어떻게 벌어 성공을 했을까요?
1. 유진 들라크루아의 생애
그는 (Eugène Delacroix, 1798-1863)는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1798년 4월 26일 프랑스 샤랑통 생모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외무장관을 지낸 샤를 들라크루아였으나, 실제로는 나폴레옹의 유명한 장군인 샤를 프랑수아 르부아가 그의 친부라는 소문이 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는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서 자라며 고전 미술에 익숙해졌다. 이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피에르 귀랭 밑에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미켈란젤로와 루벤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2. 화풍과 스타일
그의 작품은 바로크의 역동성과 강렬한 감정을 담은 낭만주의 스타일을 따른다. 특히 풍부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놀림이 특징이다. 신고전주의의 엄격한 선 중심 기법과는 대조적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활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역동적인 구도를 통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회화는 세부적인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색감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이러한 특징은 이후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3. 대표작
자유를 이끄는 민중 (1830)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프랑스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여성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 혁명군을 이끄는 모습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화가 아니라, 혁명 정신을 강렬한 색채와 구도로 표현한 낭만주의 회화의 결정판이다.
작품을 통해 자유, 혁명, 민중의 힘 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앙에 위치한 여성은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마리안느(Marianne) 로 해석되며, 한 손에 프랑스 국기를 들고 앞장서서 민중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신화적 존재처럼 묘사되었으며, 민중과 함께 혁명의 선두에 서서 독재에 저항하는 정신을 상징한다.
그림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귀족, 노동자,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혁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단결하여 자유를 위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혁명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하며, 혁명의 피와 희생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1831년 프랑스 살롱에 출품되었고, 정부가 3,000프랑에 구입하여 대중에게 공개했다. 그러나 혁명적인 분위기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몇 년 동안 전시되지 못하다가, 1848년과 1874년에 다시 공개되었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
이 작품은 고대 아시리아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적군에게 항복하기 전, 자신의 애첩들과 보물을 파괴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극적인 구도와 강렬한 색채, 혼란스러운 장면 묘사는 들라크루아의 독창적인 화풍을 잘 보여준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1822)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묘사했다. 루벤스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구도와 표현이 돋보인다.
제인의 초상’과 제인과의 관계
유진 들라크루아의 작품 중 하나인 ‘제인의 초상’ 은 한 여성의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을 담은 초상화로, 그가 특별한 감정을 품었던 인물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제인(Jane)’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그녀의 정체와 들라크루아와의 관계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의 모델이 들라크루아가 깊은 애정을 가졌던 연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들라크루아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여러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그중에서도 ‘제인’이라는 여성이 그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제인의 초상’이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들라크루아가 그녀를 향한 감정을 담아 그린 작품이라고 해석한다. 그림 속 여성의 신비로운 표정과 부드러운 색감은 단순한 모델과 화가의 관계를 넘어선 애정을 암시한다. 또한, 들라크루아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남긴 편지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그녀가 그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제인의 초상’이 그가 생애 동안 가졌던 사적인 감정과 예술적 열정을 동시에 담은 작품 이라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초상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의 사랑과 감정이 어떻게 예술로 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4. 영향받은 화가
그그는 루벤스,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과거의 거장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루벤스의 강렬한 색채와 미켈란젤로의 인체 표현을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5. 영향을 준 화가
그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은 그의 색채와 자유로운 붓놀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후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화가들 역시 그의 감정적이고 극적인 표현 방식을 계승했다.
6. 보들레르와의 관계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색채의 천재”라고 불렀다.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의 회화에서 강렬한 감정과 상징적 표현을 발견했으며, 그의 시 세계에서도 유사한 정서를 반영했다. 두 사람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7. 그의 사랑
들라크루아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여러 여성과의 연애 관계가 있었다. 특히 제니 르귈리에(Jenny Le Guillou)는 그의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로, 들라크루아의 건강을 돌보고 말년까지 그를 지켰다. 또한 ‘제인의 초상’으로 알려진 작품에서 그가 깊이 애정을 가졌던 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 사교계의 여인었던, 마담 달통이라는 여인과 사귀었다는 설이 있다.
8. 그는 가난했는가?
들라크루아는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미술계에서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왕실과 정부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았으며, 특히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벽화를 제작하는 등 공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재정적 성공을 거두었다.
9. 어떻게 성공했는가?
그는 살롱 전시회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었으며, 정치적 격변 속에서 혁명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예술적 완성도를 유지했다. 그의 색채와 감정 표현은 점점 더 많은 후원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며 공식적인 인정까지 받게 되었다.
10. 들라크루아의 작품 가격
오늘날 들라크루아의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수백억 원대에 거래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주요 작품들의 가격은 다음과 같다.
- 자유를 이끄는 민중-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지만, 만약 경매에 나온다면 수천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 2018년 경매에서 그의 관련 작품이 1,200만 달러(약 150억 원)에 낙찰되었다.
-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작품으로, 만약 경매에 나온다면 1억 달러(약 1,3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 소형 드로잉과 습작- 수십만 달러(수억 원)에서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거래된다.
작품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경매에서 큰 관심을 받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결론
유진 들라크루아는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로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혁신적인 표현 방식을 통해 낭만주의를 정립했고, 후대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예술적 열정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