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티는 팜므 파탈을 그린 원조 화가 입니다. 유혹을 부르는 치명적이고 관능적인 여인상을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한 화가. 긴머리의 여성을 고집스럽게 그렸던 그였습니다.
그는 왜 관능적인 여성을 그토록 그리려 했을까요? 그러고 보니, 팜므 파탈의 시작은 1800년대 부터 시작 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비어즐리, 뭉크, 클림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을 세상에 알렸고, 성공했고,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는지의 대해 포스팅 해 보겠습니다.
1. 로제티의 생애
그는 (1828-1882)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학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문학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였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며, 신화적이고 문학적인 주제를 그림과 시로 표현했다.
2. 라파엘 전파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PRB)는 1848년 영국에서 창설된 예술 운동으로, 존 에버렛 밀레이, 윌리엄 홀먼 헌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등이 주도했다. 이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 이후의 미술이 기계적이고 경직되었다고 판단하고, 라파엘 이전의 예술에서 영감을 얻고자 했다.
라파엘 전파는 자연주의적인 표현과 극도로 정밀한 세부 묘사를 중시했으며,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회화 스타일과 차별되는 혁신적인 기법을 시도했다. 또한 상징주의와 중세적 주제를 강조하며, 문학적 요소를 작품에 녹여냈다. 그들의 회화는 감성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며, 성경, 신화, 문학 작품을 주제로 한 경우가 많았다. 라파엘 전파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에는 점점 더 개인적인 스타일로 변화하여,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3.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에 집착
그의 그림에서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을 지속적으로 묘사했으며, 이는 그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그의 여성상은 현실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신화적이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인 여성상과 차별화되며, 특유의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스타일을 나타낸다.
그는 여성의 긴 머리카락을 신비롭고 초월적인 요소로 해석했으며, 성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양과도 연결 지었다. 특히 그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엘리자베스 시달과 제인 모리스가 이러한 긴 머리 여성상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다.
4.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의 우울증
엘리자베스 시달(1829-1862)은 부인이자 모델, 예술가로서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가난한 모자 가게 점원의 딸로 태어났지만, 라파엘 전파의 주요 모델이자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녀의 고혹적인 외모는 여러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오필리아(Ophelia)를 연기한 그림에서 유명하다.
시달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렸고, 시를 집필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우울과 건강 문제로 점철되었으며, 그와의 관계에서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건강이 좋지 않았고, 결국 1862년 아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로제티는 그녀의 무덤에 자신의 시집을 묻었으나, 몇 년 후 후회하며 그것을 다시 발굴하기도 했다. 시달의 죽음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예술과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5.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
그의 독창적인 화풍은 이후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라파엘 전파의 두 번째 세대와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대표적인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다음과 같다.
- 에드워드 번존스 -그의 몽환적인 여성상과 중세적인 분위기를 계승하여 더욱 화려한 장식적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 윌리엄 모리스 – 그와 함께 활동하며 미술과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주도했다. 그의 장식적이고 자연을 반영한 디자인은 로제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 구스타프 클림트 –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화가로, 클림트의 황금빛 장식적 양식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화풍에 영향을 주었다.
- 오브리 비어즐리 – 19세기 말 아르누보 스타일을 대표하는 화가로, 감각적이고 신비로운 인물 묘사에서 영향을 받았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 후기 라파엘 전파 화가로,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주제를 이어받아 정교한 표현과 색채를 구사했다.
6. 19세기 영국 사회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산업혁명이 한창이었으며, 예술은 점차 상업화되었다. 기존의 아카데미적 회화 스타일에 반발하며, 보다 감성적이고 상징적인 그림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7. 경제적 성공과 몰락
생애 초반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그의 예술이 인정받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건강 악화와 우울증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졌고, 결국 1882년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그림과 시는 점점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고, 특히 부유한 후원자들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으며, 고가의 가구와 골동품을 수집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다.
엘리자베스 시달의 죽음 이후 그는 점점 더 약물과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특히 클로랄 하이드레이트(수면제)의 과다 복용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1882년 4월 9일, 그는 클로랄 하이드레이트와 알코올 남용으로 인한 신장 질환과 전반적인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오랜 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쇠약의 결과였으며,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깊은 우울과 고립 속에서 지냈다.
결론
19세기 영국 미술계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인물로, 그의 그림과 시는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