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의 돈 문제, 사랑, 정신병. 인상주위 아름다운 빛과 색채의 변화, 황홀하고 빠른 붓터치, 하지만, 그의 삶은 그림처럼 황홀하지 못했고, 삭막했고, 슬펐습니다. 물론 그 삶속에 행복도 사이사이 있었겠지만, 그의 일대기를 읽고, 그림을 바라보면 마음이 동화되어 그림이 슬퍼 질때가 있어요.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반 고흐의 삶과 돈문제, 여자 문제,그리고 갈등 정신병에 대해 포스팅해 보고 자 합니다.
1. 빈센트 반 고흐는 가난해서 일상적인 것을 그린 것일까?
그는 가난한 삶을 살았고, 실제로 모델을 고용할 여유가 없었다.하지만 그가 신발, 방, 카페, 하늘을 그린 이유는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고흐는 일상 속에서 감정을 담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투영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
- 해바라기 –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상징.
- 카페와 밤하늘 – 사회적 소외와 위로.
- 별이 빛나는 밤 – 불안과 희망의 공존. 1889년에 그린 대표작 중 하나. 프랑스 생폴드모솔 수도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상상하여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붓터치로 표현된 이 작품은 감정적인 표현과 정신적인 불안정을 반영하며,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예술과 갈등의 이야기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첫 만남
당시 고흐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색채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고, 고갱은 보다 상징적이고 원시적인 표현을 탐구하고 있었고, 1887년 파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적 스타일에 매력을 느꼈지만, 성격과 철학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
고흐는 고갱의 색채 감각과 구성을 높이 평가했고, 고갱은 고흐의 감정적인 붓 터치와 독창적인 색감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과 예술 철학은 극명하게 달랐다. 이 차이는 결국 둘 사이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끝나게 만든다.
아를의 노란 집: 함께한 9주간
1888년,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로 이주하여 “노란 집(Yellow House)”을 임대했다. 그는 이곳에서, 예술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고, 그 첫 번째 멤버로 폴 고갱을 초대했다.
테오 반 고흐(고흐의 동생)가 고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조건으로, 고갱은 마지못해 아를로 향하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생활하며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성격 차이와 예술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점점 심화되었다.
3. 빈센트 반 고흐의 귀 절단 사건과 정신병
1888년 12월, 고흐는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행동을 했다.
귀 절단 사건: 갈등의 절정, 888년 12월 23일, 고흐와 고갱은 또다시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 날, 감정이 격해진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고갱을 위협했다는 설도 있다.결국 고갱은 노란 집을 떠나 호텔로 피신했고,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그는 잘린 귀를 천에 싸서 근처 매춘부에게 건넸고, 다음 날 아침, 심각한 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발견되었다.이 사건 이후, 고갱은 즉시 아를을 떠났고,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고흐의 정신병 원인
- 유전적 요인
- 경제적 어려움
-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4. 빈센트 반 고흐의 베스트 프렌드, 동생 테오
고흐의 베스트 프렌드는 다름 아닌 동생 테오.
고흐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후원자는,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였다. 테오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그의 예술을 지지하고 끝까지 지원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흐는 평생 동생 테오와 600통 이상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 편지 속에는 그의 고통, 희망, 예술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후, 테오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6개월 만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두 형제는 결국 같은 무덤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5.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여자
시엔 호르닉, 그녀는 누구였을까?고흐는 시엔 호르닉(Cornelia “Sien” Hoornik)을 사랑했지만, 가난과 사회적 반대로 인해 결국 헤어졌다.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시엔 호르닉(Cornelia “Sien” Hoornik, 1850~1904)은 그가 유일하게 함께 살았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고흐만큼이나 고통스러웠으며,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 시엔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매매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삶은 불안정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바느질과 가정부 일, 그리고 거리에서의 삶을 병행 해야 했다. 그런 그녀가 고흐를 만난 것은 188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였다.
- 고흐와 시엔: 사랑이었을까, 동정이었을까?
고흐는 시엔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을 보았다. 그는 그녀의 상황에 깊은 연민을 느꼈고 , 그녀를 돕고 싶어 했다. - 그는 시엔과 함께 살며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슬픔(Sorrow) 이다.
이 작품 속 시엔은 맨몸으로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이는 그녀의 절망적인 삶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고흐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고흐의 동정심이 컸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고흐가 그녀를 사랑했다기보다, 자신과 같은 외로운 영혼을 발견했다고 느꼈을 것 이라고 해석한다. - 시엔과의 결별: 피할 수 없는 현실
고흐는 시엔과 결혼을 원했지만,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특히 동생 테오는 고흐가 시엔과 함께하는 것을 걱정하며 경제적 지원을 줄이겠다고까지 했다. - 결국 고흐는 1883년, 그녀와 헤어지게 된다.
그가 남긴 편지를 보면, 그 또한 그녀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헤어진 후, 고흐는 프랑스로 떠나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시엔은 다시 가난한 삶 속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시엔 호르닉의 마지막: 비극적인 죽음
고흐와 헤어진 후, 시엔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녀는 다시 성매매와 가정부 일을 병행하며 힘겹게 살아야 했다. 1904년,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과 가난 속에서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강에 몸을 던져 익사 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죽음은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4년 후에 일어났다.
6. 반 고흐는 왜 생전에 단 한 점만 팔았을까?
- 반 고흐는 생전에는 거의 무명 화가였다 . 하지만 현재는 가장 비싼 그림을 남긴 화가 중 한 명이다.
당시 미술 시장의 흐름과 맞지 않았다. - 그의 그림은 색채가 너무 강렬하고, 독특한 붓 터치가 많아, 당시 유행하던 아카데믹 미술과 맞지 않았다.
- 동생 테오의 지원에 의존했다. 반 고흐는 작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대신, 동생 테오가 생활비와 미술 재료를 지원해 주었다.
덕분에 그림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 유일하게 판매된 작품
반 고흐가 생전에 유일하게 판매한 작품은 붉은 포도밭(The Red Vineyard) 이다.
이 그림은 1890년 브뤼셀에서 약 400프랑(현재 가치로 약 1,000달러)에 팔렸다.
7. 반 고흐 작품의 가격 변화: 생전 vs 사후 vs 현재
반 고흐 생전의 작품 가격반 고흐의 그림은 그가 살아있을 때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 반 고흐 생전의 작품 가격
반 고흐가 생전에 유일하게 판매한 작품은 붉은 포도밭(The Red Vineyard 이다. 이 그림은 1890년 브뤼셀 전시회에서 약 400프랑(현재 가치 약 1,000달러, 한화 약 130만 원)에 팔렸다. 그 외에도 그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선물하거나,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 대신 작품을 주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 반 고흐 사후 100년간의 가격 상승
20세기 초, 그의 작품은 서서히 인정을 받았고, 1920~30년대에는 몇 천 달러(수백만 원) 수준 으로 가격이 올랐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그림 가격이 급상승했다.
반 고흐의 표현주의적인 화풍이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 현재 반 고흐의 최고가 작품
반 고흐의 그림은 현재 경매에서 수천억 원에 거래 될 정도로 가치가 높다.
영원의 문 앞에서(At Eternity’s Gate) – 2022년 경매에서 약1,000억 원에 판매
라크루아의 정원(The Garden of Daubigny) (1890) – 2021년 약 850억 원에 낙찰
가셰 박사의 초상(Portrait of Dr. Gachet) (1890) –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500억 원에 판매 (당시 최고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