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밀레의 가난과 성공 스토리

화가 밀레의 가난과 성공 스토리를 알고 있나요? 밀레 하면, 그의 대표작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을 많이들 알고 계실텐데요, 그는 사실주의 화가 혹은 바르비 종파 ( 19세기 산업화와 정치적 요동속에 자연을 지향하는 프랑스 화가들이 만든 집단) 농민의 삶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는 그가 성장기를 농민의 삶을 가까이 보며 자랐기 때문 입니다. 특히 이삭 줍는 여인은 매우 유명하고 대중적이어서 많은 재밌는 패러디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개인적은 삶을 잘 알지는 못 할것입니다. 찌든 가난으로 물감 살 돈이 없어서 <만종, Angelus>을 그릴 당시, 스테반스 라는 사람이 1000프랑을 지원하고 그림을 받는 조건으로 후원을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연 그의 가난, 그의 삶을 어땠을까요?

1. 밀레의 생애

그는 (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농민들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그뤼쉬(Gruchet)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며 농민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그는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아 파리로 유학을 떠났지만, 초기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초상화와 장식화를 그렸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후 그는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2. 경제적 어려움과 성공

그는 생애 동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초기에는 가난에 시달렸고, 작품이 잘 팔리지 않아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점차 주목받으며, 후원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경제적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이삭 줍는 여인들》(1857)과 《만종》(1859) 같은 작품이 큰 호평을 받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하지만 그는 상업적인 성공보다 예술적 신념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여기서 잠깐, 만종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위의 그림은 두 부부가 대지에 서서 감자바구니를 바라 보고 있는 모습이다. 남편으로 보이는 자는 모자를 잡고 있고,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어깨를 늘어뜨린채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사실 이 그림의 내용을 모른다면, 이 그림은 평화로운 농민 부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 보겠지만, 사실 이 그림은 아주 슬픈 이야기가 있다.

감자바구니 이전에 원래는 그 자리에 작은 관이 있었다. 그 관에는 이들의 아기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사했고, 이들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좌절 하는 그림이다. 그림속의 관을 본, 밀레의 친구는 관의 그림을 없애자고 제안 했고, 고심하던 그는 관 대신 그 자리에 감자 바구니로 수정을 했다. 그림의 이 비밀이 밝혀진것은, 한 정신병자가 만종을 찢으면서 벌어진다. 만종 작품이 손상되자, 복원을 위해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무 관의 밑 그림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가난에서 성공을 이룬 예술가

초기 생애와 가난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 그루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농민이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도우며 자랐다. 부모님은 가난했지만, 밀레가 학문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격려해 주었다.

젊은 시절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그는 미술 교육을 받기 위해 셰르부르와 파리로 갔지만,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여러 차례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초기에는 초상화 및 상업용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가난 속에서도 그는 농민들의 삶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경제적 전환점과 성공

경제 상황은 1848년 이후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특히, 1850년대에 발표한 이삭줍는 여인들만종 등의 작품이 점차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명성이 상승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산업화와 농업의 변화 속에서 노동과 삶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었고, 밀레의 작품이 그 시대적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1859년 파리 살롱에서 만종을 출품하며 큰 주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부유한 컬렉터들과 미술 애호가들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밀레의 그림 가격은 급상승했으며, 점차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 정부에서도 그의 작품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구매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성공한 화가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번영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는 1860년대 중반 이후였다. 그는 바르비종파의 주요 화가로서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팔았으며, 컬렉터들과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부유한 수집가들이 그의 그림을 높은 가격에 사들이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말년에는 작품 한 점당 당시 기준으로 수천 프랑에 거래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그가 젊었을 때 극심한 가난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규모의 초상화나 장식화를 그려야 했던 시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결국 경제적 여유를 얻어 가족과 함께 바르비종에서 여생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다.

결론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키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과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경매에서도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3. 대표작과 뒷이야기

1 이삭 줍는 여인들 (The Gleaners, 1857)

이 작품은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세 명의 여인을 묘사하고 있다. 농민들의 힘든 노동과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당시 상류층과 부유한 계층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 이 작품은 사실주의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2 만종 (The Angelus, 1859)

《만종》은 황혼 무렵 들판에서 기도하는 농민 부부를 그린 작품이다. 이들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종소리에 맞춰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밀레는 이 그림을 통해 신앙과 노동의 조화를 강조했다.

이 작품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제기한 것이다. 그는 《만종》 속 농부들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X-ray 분석을 실시했는데, 실제로 초기 스케치에는 땅에 작은 관이 있는 형태가 발견되었다.

3 씨 뿌리는 사람 (The Sower, 1850)

이 작품은 한 농부가 커다란 걸음으로 씨를 뿌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밀레는 이 그림을 통해 노동의 숭고함을 강조했으며, 농부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에는 이 그림이 너무 어두운 분위기를 띠고 있어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4 양치기 소녀 (Shepherdess with her Flock, 1864)

이 작품은 한 소녀가 양 떼를 돌보는 장면을 그렸다. 밀레는 단순히 풍경화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전통적인 이상적인 풍경이 아닌, 현실적인 농촌 생활을 강조하는 스타일을 유지했다.

5 겨울의 저녁 (Winter Evening, 1867)

이 그림은 눈 덮인 들판에서 힘겹게 걷는 농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겨울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통해, 밀레는 인간의 강인함을 표현했다.

4. 결론

그는 평생 가난과 싸우면서도, 예술에 대한 신념을 지키며 농민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농촌 풍경이 아니라, 인간 노동의 숭고함을 담고 있으며, 현대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그의 화풍과 철학은 후대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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